이번 추석에 채택한 노선 그리고 깨달음 떠들기
어머니가 계시고 내가 장남이라 명절이면 대구를 가지 않을 수 없다. 용산역 광장에서 전경들이 앉으라며 휘두르는 대나무작대기에 턱이 걸릴뻔하며 귀성행렬에 몸을 싣던 80년대의 추억에서부터 이제 내 차로 마누리와 아들 두루랑 대구에 내려가기까지 온갖 기차에 온갖 버스에 비행기로도 가고 승용차로도 가고 승합차로 버스전용차로를 타고 가기도 한 24년 여정이 내 귀성 이력을 채울동안 무엇 변변한 깨달음 하나 없었다. 그런데 올해 이 추석만큼은 나를 아주 기쁘게 해준 여정이 되었다. 원래 있던 10일 아침 마누리 수업이 취소되어 일찍 떠날까 생각도 했다. 추석 당일에 임박할수록 한가해지는 교통의 법칙을 체득한지 오래라 일찍 가도 길에서 시간버릴건데 피곤하게는 나서지 말자 싶기도 하고, 전날 수업이 늦게 끝난데다가 새벽에 문상까지 다녀오느라 피곤하기도 해서 느즈막히 일어나서 오후 1시 무렵에 길을 떠났더랬다. 떠남의 마음가짐도 이왕 막혀 더디 갈 길이면 둘러둘러 구경하며 가자 였다. 길을 나서면서 켜놓은 라디오에서 아침 여덟시에 목동을 나섰다는 이가 나왔는데 지금 판교란다. 유후~ 나도 판교다. (왜 남의 불행이 이다지도 기쁘단 말인가? 내 판단이 옳았다는 훌륭한 입증재가 있어서 그런건가?) 경부선이 서있다. 영동선은 그래도 움직이네. 그래 영동으로 가자. 느릿느릿하던게 용인휴게소를 지나니 쓔웅 쓔웅 쏘는 것 같다. 중앙고속도로가 덜 밀릴 것 같아 원주까지 목표로 달리는데 여주휴게소 못미쳐부터 또 막힌다. 중부내륙고속도로라는 처음 보는 길로 갈라지는 안전지대서 지도 한 번 보고, 다시 길 한 번 보고, 라디오 한 번 듣고, 에라 모르겠다. 내륙으로 가자 해놓고 자는 마누리를 깨워 지도를 보며 길안내하라고 했다. 충주 탄금대 옆 호수부터 수안보가는 월악산 길구경에 문경 조령을 넘고 상주가는 길에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가는데 얼추 7시간 걸렸다. 평소면 4시간 반쯤 걸리는 길이니 훌륭히 도착한 셈이다. 게다가 경치까지 덤으로 얻었지 않은가? 올라 오는 길엔 아예 경부선으로 안가고 중앙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영주나들목을 지나 무슨 터널까지 막힌다고 해서 긴 구간 많이 막히는 줄 알고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더니 터널이 눈앞인 짧은 거리 아주 조금 막히고는 쌩쌩달리는게 아닌가. 아! 이번엔 잘못된 선택을 햇나 싶은 마음으로 국도를 달리는데 희방사역 팻말이 보이더니 소백산 넘는 구빗길이 나타나는게 아닌가? 얼마나 아름다운 길인지. 터널로 금방 갈 12킬로 길을 25킬로 길로 구비구비 돌며 갔지만 탄성만 연발하였다. 게다가 단양 내륙관광도로를 따라 달리는 그 길은 일부러라도 달리고 싶은 아름다운 길이다. 태풍이 내 뒤를 따르며 비를 뿌리기 시작할 때까지 줄곧 이어진 아름다운 길 속에서 명절이면 겪는 막힘의 그 괴로움은 아예 자리하지 않고 아! 정말 기쁘다. - 두 가지를 한꺼번헤 했다는 그 기쁨이 가득하였다. 목표를 향해 조갈증나게 달리며 일이 잘안되어 힘들 땐, 돌아가보라. 근데 왜 난 이렇게 기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고 살았을까? |
'이런저런 게시판에 쓴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난 토요일 열린 문화살롱 라우리안의 50회 음악회 (0) | 2011.07.06 |
---|---|
내가 그간 고생해온 고질병으로 ....| (0) | 2011.07.06 |
폭넓게 생각한다고 하지만...| (0) | 2011.07.06 |
의무(무상)급식, 우리 국민이 처음으로 남을 생각하기 시작한 결정입니다. (0) | 2011.07.05 |
딴따라의 힘 - 저는 나는 가수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웁니다. (0) | 2011.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