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민신문에 쓴 글

[칼럼]이 가을에 나는 그의 친구답고 싶습니다

네올 2014. 10. 31. 11:02

이 가을에 나는 그의 친구답고 싶습니다

 

 

 

이제 떠난지 반 년이 겨우 지났는데 너무나 아득한 느낌의 벗, 고 문홍빈 안양YMCA총장을 문득 꿈에서 만났습니다.

생전의 그 화안하게 웃는 바보 얼굴 그 문총장이 누군가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너무나 반가와서 와락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며 눈물을 흘리다 그만 잠에서 깨었습니다.

마침 세월호 국민공동대책위 활등으로 바쁜 아내가 자정을 넘겨 들어오는 바람에 깬 것인지 제가 눈물을 흘리다 깬 것인지 모르지만 방문을 들어서는 아내더러 “나, 문 총장 봤다”고 말하고는 다시 그를 만나러 잠을 청했습니다만 그 시간이 길었는지 그는 가버리고 없었습니다.

지금도 살아남은 국민의 안전을 위해, 아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왜 국가가 아이를 지키지 못했는지, 왜 구하지 못했는지 진상을 규명하고자 애쓰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 분들의 소망 가운데 하나가 아이를 꿈속에서라도 한 번 만나고 싶다는 것이라 합니다.

아이를 꿈에서 만난 날엔 너무나 좋아서 싱글벙글하고 싶지만 꿈조차 꾸지 못한 다른 가족들에게 미안해 차마 말하지 못한다 하면서도 꿈꾼 자랑은 다 하시는 그 유가족 분들처럼 나도 이곳 저곳에다 문 총장 만난 자랑을 합니다.

제가 문 총장을 그리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더불어살고자 하는 시민사회의 가치 실현을 위해 함께 힘써온 동지라서가 아니라 문 총장이 자기 아내도 돈번답시고 자기 월급이 얼마되지도 않은데도 제 밥값만은 꼭 내주겠다는 서원을 했다는 그 말을 제 가슴속에 깊이 새겨놓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 사정을 아는 이들이 밥이야 사주지만 문 총장만큼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다는 상실감이 무척 큰가 봅니다. 문 총장을 너무 부려먹어서 그가 먼저 떠났는가 싶고, 그가 못다한 일을 내가 해야 한다는 마음도 있고 해서 마음을 추스려야지 하는데도 그리 되질 않습니다.
시인 김남주의 바닥 저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리는 음성,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라는 목소리, 그의 시처럼 나도 바람은 간절한데 왜 여전히 망연자실한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좋아 보이는 그의 얼굴이 거기서는 잘지내는가 싶은 마음이 한자락 위로가 되는 시월입니다.

시인 김남주의 시 한 자락 남겨 봅니다.


<이 가을에 나는>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囚人)이다
오라에 묶여 사슬에 손발이 묶여
또 다른 곳으로 끌려가는
……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만큼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숫돌에 낫을 갈아 나락을 베고 있는 아버지의 논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염소에서 뿔싸움을 시키고 있는 아이들의 방죽으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