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큐멘터리가 참 재미있습니다.
큰 화면에다 사진보다 빼어난 화질의 매력도 크지만 치밀한 기획과 오랜 준비과정을 통해 정성을 들인 노력도 돋보입니다.
여기다 다양한 지식정보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여서입니다.
그 가운데 사람을 알아가는 재미가 큰 EBS의 세계 테마 기행과 다큐프라임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얼마전 방영한 EBS 다큐프라임 『동과 서』 1부 ‘명사로 세상을 보는 서양인, 동사로 세상을 보는 동양인’, 2부 ‘서양인은 보려 하고, 동양인은 되려 한다’라는 제목의 다큐는 정말 재미있게 보아서 많은 많은 분들게 권하기도 합니다.
이 다큐는 ‘왜 차이가 생겼을까?’ 하는 의문도 해결해주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동양과 서양이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인식체계의 차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양은 현상 그 자체를 중시하지만 동양의 세계관은 모든 것을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물에 대해서건, 사람에 대해서건 사건에 대해서건 마찬가지같습니다.
예를 들면 남편의 술자리까지 찾아오는 바람에 일어난 부부싸움도 사소한 일로 시작했지만, 그것은 이미 그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신 남편에 대한 불만이며 그 전에 아내의 구속과 간섭이 있었고, 그 전에 주말만을 기다리는 가족의 서운함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서양의 방식으로 해결하자면 ‘남편의 자존심을 구긴 아내의 책임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는 당장에 늦게까지 술을 마신 남편의 잘못이지 어떻게 아내의 책임이냐라는 반론에 부닥치게 됩니다.
이렇듯 일상다반사조차 바로 그 순간만 따지면 아무런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구조로 짜여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은 이전 관계의 총체이며, 앞으로 변화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아는 동양적 세계관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지켜보아 온 정주(定住)문화의 총체이며, 이는 농경(農耕)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변함없을 것 같은 저 산도 봉래 금강 풍악 개골이라는 이름처럼 변한다는 것을 알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저 뒤편에도 무언가가 있음을 알기에 동양화는 눈에 보이는대로 그리지 않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인식체계는 관계를 중시하고 변화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관이 근대화의 격랑으로 서양의 인식체계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면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은 관계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부부싸움을 해도 서로 지려 하지 않습니다.
각자 서양적인 세계관에 기초하여 자신이 유리한 그 순간, 그 상황만을 인용하고 끝없이 꼬리를 무는 논쟁입니다.
문화도 그렇습니다.
얼마 전 개장한 삼덕공원도 마치 액자에 그려진 그림같이 이쁘기만 합니다.
어디에 걸어두어도 이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공원은 만안구에, 안양4동과 3동에, 안양 중앙시장 옆에, ‘걸어두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갖고 놀기 위한’ 것이라는 관계가 배려된 설계로 보이지 않습니다.
관계를 고려하지 않음이 바로 스쳐지나가면 그만인 떠돌이문화요 떠돌이의식입니다.
이전의 APAP가 정말 관계에 대한 이해가 없었습니다.
새로 추진하는 APAP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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